“바다는 내 스튜디오, 하지만 여전히 두려워요” 수중사진작가 와이진

동아닷컴
동아닷컴2019-05-27 08:00:02
공유하기 닫기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예쁜 곳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인증샷 찍기다. 빠르게 사진을 공유하고 공감도 얻어야 한다. 어떤 때는 사진을 찍기 위해 예쁜 카페를 찾아 다니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사진작가인 셈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끝이자 디지털 시대의 시작이었던 2000년대 초. 책,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 과거 미디어는 인터넷의 발달로 웹사이트로 옮겨졌다. 사진에서도 큰 변화가 생겼다. 손쉽게 사진을 찍고 인화할 수 있는 DSLR이 보편화 됐다.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시기에 와이진(Y.Zin)은 사진작가로서 고민을 한다. 나만의 가치는 무엇일까? 그는 대한민국 최초 수중 작가가 됐다.

권혁성 PD hskwon@donga.com
"내가 아니어도 돼?"
사실 와이진의 첫 꿈은 사진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의상학을 전공한 스타일리스트였다. 남들이 보면 스타일리스트에서 사진작가로 직업이 바뀐 것이 의아할 수도 있지만 그는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라고 했다.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일하는 직업에는 사진작가, 촬영 감독 등이 있다. 자신이 코디한 모델을 찍어 업체에 전달하는 것도 스타일리스트의 일 중 하나이다. 자신이 꾸며 준 모델을 더 예쁘게 찍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던 그는 자연스럽게 사진 작가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급변하는 시대에 사진가로서 자신만의 특기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일까? 머리가 복잡해진 와이진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고등학교때부터 모아둔 CD에서 너바나(Nirvana) 앨범을 찾아 듣게 된다. 그는 앨범 커버 사진을 본 순간 마음을 뺏겨버린다. 물속에서 아기가 달러 지폐를 잡고자 하는 사진이었다. “디지털 기계가 물속에? 아기가 물 속에서? 눈을 뜨고?”

사진에는 그의 호기심을 발동시킬 ‘흥미로운 모순’들이 가득했다. 그는 수소문 끝에 영국 사진작가 제나 할러웨이가 스킨스쿠버로 수중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수중 작가의 길.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기 시작한 와이진은 2008년에 내셔널지오그래픽 다이버 라이선스를 얻었다.




바다 그리고 경외감
“바다는 제 작업공간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두려운 존재입니다.”

수중 촬영은 조류, 수온, 날씨, 햇빛 등 자연 상황에 맞춰 진행해야 한다. 안전도 보장되어야 촬영을 잘할 수 있기에 끊임 없이 다이빙 공부를 해야한다. 장소 선정도 쉽지 않다. 수중 동굴을 촬영하고 싶으면 그에 맞는 다이빙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촬영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환경에서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더 어려운 다이빙 기술이 필요했다. 그는 아시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사이드마운트 트라이믹스(산소, 질소, 헬륨의 세가지 기체를 혼합하여 호흡하며 공기탱크가 양옆에 위치하는 형태)로 수심 100m 까지 내려간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런 도전들 덕분일까. 와이진은 지난 2014년 내셔널지오그래픽 코리아가 선정한 3대 탐험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된다. 감격과 무게감을 함께 느낀다는 그는 수중 촬영은 매 순간 긴장해야 하고 자연 앞에 자만하지 않게 되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by YZIN COMPANY. 와이진 컴퍼니 제공
“매력적인 일이지만...”
수중 작가로서 딜레마에 빠진 적도 있다. 안전 문제와 촬영에 드는 비용이 컸기에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스쿠버를 좋아하는 것일까? 물 속에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것일까?” 명확히 알고 싶어진 그는 처음으로 수중 카메라 없이 제주도로 스쿠버 다이빙 여행을 떠났다.
돌도 많고 바람도 많은 제주도. 날씨가 좋지 않아 물 속에 들어가지 못한 그는 바다에 나가고 있는 해녀를 발견하게 된다. “나이 드신 분들이 바다에 어떻게 들어가시냐”고 가이드에게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해녀잖아.”


발걸음이 멈췄고, 카메라를 안 들고 간 것을 후회 했다. 친구의 카메라를 뺏어 여행사진을 다 지운 다음 해녀에게 뛰어갔다. 해녀들의 모습을 정신 없이 찍고 있었다. “너 슬럼프라면서 무슨 사진을 또 찍냐”라는 친구들의 원성을 듣고는 “‘슬럼프가 아니었구나. 그저 지쳤던 거구나’라고 깨달았다.



권혁성 PD hskwon@donga.com
“이제 제주도 가고 싶으면 와이진한테 연락하면 돼요?”
그는 ‘ADEX 싱가폴 2015’에서 국제해양박람회 강연 당시 한국의 수중사진작가를 처음 만나본다며 반가워 했던 외국인들의 반응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유네스코가 주목한 지구의 보물, 제주도 바다에 대해 많은 외국인들이 궁금해했다(제주도는 2002년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고 2007년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이어 2010년에는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받았다). 한 외국인은 “이제 제주도 가고 싶으면 와이진한테 연락하면 되는거야?”라며 관심을 보였다고.

와이진은 “제주 바다는 수온이 낮고 파도가 심해 어느 정도 실력이 갖춰진 다이버들에게만 허용되지만 사람 몸 만한 산호들이 녹차 밭처럼 군락을 이루고 있다”며 제주의 매력을 강조했다.



“’엘사’ 찍으러 가보고 싶어요”
“엘사는 남극에 살지 않을까요?” 육지보다 바다가 넓다 보니 아직 도전하고 싶은 게 많다. 특히 아직 안 가본 남극에 가서 촬영해 보고 싶다고. 와이진은 “모든 사진작가들이 자신의 스튜디오는 자신이 청소한다”며 누구보다 몸 소 느끼고 있는 바다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전달하는 메신저로서 창의적인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는 그는 자신의 지난 날을 뒤돌아 보며 젊은 혈기에 더 적극적으로 호기심을 풀고자 노력 했던 거 같다며 웃었다. 의상학을 전공하다 사진에 호기심이 생겨 사진작가가 되었고, 자신만의 강점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다 수중 작가가 된 와이진. 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민선 인턴기자 · 정리 이예리 기자 dla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