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점원 된 장애청년들 “편견 벽 깨고 싶어요”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5-20 11: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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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앞을 보면 날짜가 써 있죠? 이건 15일까지고 이건 16일까지네요. 그럼 뭐가 앞으로 와야 하죠?”

5월 15일 장애인복지관인 서초구립 한우리정보문화센터 입구에 있는 GS25 늘봄스토어. 직업훈련교사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박지환 씨(27)는 유통기한이 15일로 적힌 도시락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유통기한이 16일인 도시락 앞에 놓았다. 도시락 진열을 마치고는 컵라면 매대로 갔다. 종류별로 놓인 컵라면 중 제품이 빈 곳을 찾아 하나씩 채워 넣었다. 제품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줄을 맞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박 씨는 지적장애인이다.



그는 지난달부터 이 편의점에서 점원 훈련을 받고 있다. 상품을 진열하고 유통기한을 점검하며 매장을 청소하는 것 등을 배웠다. 앞으로 계산대에서 상품 결제를 하는 과정 정도만 배우면 된다. 그는 조만간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에서 입사 면접을 볼 예정이다. 면접을 통과하면 GS25 직영점에 배정돼 일하게 된다.

편의점 점원은 쉴 새 없이 손님을 상대해야 한다. 사람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 많은 서비스업에 장애인은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장애인 일자리가 주로 장애인들이 모여서 수작업을 벌이는 제조업에 편중된 이유다.

그런 인식과 현실을 깨고자 서초구와 GS리테일은 지난해 10월 협약을 맺고 장애인들에게 점원 교육을 실시한 뒤 심사를 거쳐 채용하기로 했다. 올 1월 한우리정보문화센터에 GS25 편의점을 열어 이들의 업무 실습 장소로도 활용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립 한우리정보문화센터의 GS25 늘봄스토어에서 박지환 씨(오른쪽)가 강봉숙 센터 직업훈련교사(가운데)에게서 상품 결제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1월 말부터 약 두 달간 직무훈련을 한 뒤 지난달 정식 점원이 된 양창빈 씨(왼쪽)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여기서 점원으로 일하는 양창빈 씨(20)는 1월부터 두 달간 이곳과 센터 지하에 있는 직업훈련장을 오가며 교육을 받았다. 양 씨는 청각 및 지적장애가 있고 뇌병변을 앓고 있다. 일할 때 뭐가 힘든지 묻자 양 씨는 “어려운 점은 없고 일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양 씨를 비롯해 3명이 1월부터 교육을 받고 점원으로 채용돼 하루 평균 4시간씩 3교대 근무를 한다. 다른 2명은 발달장애인이다. 월 급여는 100만 원이 넘는다.

편의점 점원으로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에 대해 GS리테일 내부에서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업을 기획한 이선규 GS리테일 인사기획팀 과장은 15일 “현재까지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박관념이 있는 걸로 보일 만큼 정확함을 추구하는 성향 등 일부 지적장애인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은 상품 정돈과 매장 청결 관리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남은 과제는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점원이 장애인인 걸 알고 함부로 대하는 손님이 종종 있다. 이 과장은 “장애인의 능력을 키우는 것과 함께 시민의 배려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서초구와 GS리테일의 시도는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다. 한우리정보문화센터의 편의점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센터 관계자들이어서 장애인을 배려하는 언행이 대부분 배어 있다. 그러나 박 씨를 시작으로 앞으로 고용되는 장애인은 일반 편의점에서 일하게 된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장애인은 서비스업에 종사하기 어렵다는 편견의 장벽을 깨뜨리게 된다. 유통업이 고용 유발 효과가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애인 일자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최근 청년실업률이 심각하다는 통계가 나왔는데 장애인들은 더욱 고통을 겪고 있다. 장애인의 최대 소망인 자립 기회를 늘려나가겠다”고 말했다.

일자리는 누군가에게 꿈이기도 하고 꿈을 위한 발판이기도 하다. 박 씨는 “면접을 꼭 통과해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 씨는 어려서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일해서 번 돈으로 어머니에게 옷을 사주고 싶고 언젠가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두 청년은 오래도록 일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많은 청년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