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1등 압박감에 매일 잠설쳐… 경쟁 없는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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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2019-05-17 09: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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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가 5월 16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심경을 밝히며 눈물을 닦고 있다. 김종원 스포츠동아 기자 won@donga.com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자….”

‘마지막’을 언급하던 ‘빙속 여제’ 이상화(30)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는 “어떡해”라고 혼잣말을 하며 감정을 억누르느라 약 10초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5월 16일 은퇴식을 한 이상화는 20여 년의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선언했다.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정리해서 말할지 며칠 동안 고민했다. 너무 떨리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 간략하게 준비했다”며 그는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열다섯 살 때 처음 국가대표가 되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을 준비하며 막내로 출전해 빙판에서 넘어지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했었는데,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다. 선수로 뛰기에는 많은 나이가 됐다”고 했다. 그는 “그때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개인적으로 목표를 세웠다.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과 올림픽 금메달, 세계 신기록 보유였다. 해야 한다는,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왔다”고 했다.

목표를 다 이룬 그였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항상 무릎이 문제였다. 수술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지만 수술을 하면 선수로 뛸 수 없다고 했다. 재활과 약물치료로 싸움을 계속 했지만 제 몸은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았다”고 은퇴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항상 ‘빙속 여제’라 불러주시던 최고의 모습만 기억해주셨으면 한다”는 그는 “‘살아 있는 전설’로 기억되고 싶다. 노력하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선수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노력을 되돌아봤다.


2013년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에서 세웠던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36초36의 세계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과 2014년 소치 올림픽 여자 500m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따며 아시아 선수로선 처음으로 올림픽 2연패를 이뤘다. 그 역시 “소치 올림픽에서 올림픽 2연패를 했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칭찬을 하고 싶다”며 가장 기억하고 싶은 순간으로 꼽았다.



‘빙속 여제’ 이상화가 마지막 올림픽이 된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역주하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자신의 세계 기록에 대해 “욕심이지만 영원히 안 깨졌으면 좋겠다. 언젠가 깨지겠지만 1년 정도는 유지됐으면 한다”고 했다.

선수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으로는 ‘마인드 컨트롤’을 언급했다. 그는 “1등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잠을 편히 잔 적이 없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 꼭 1위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식단 조절도 해야 했다. 그런 것들이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했지만 모든 것을 자제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잠을 편히 자보고 싶다. 이제 선수 이상화는 사라졌으니 일반인으로 돌아가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나 오전 5시에 일어나 오후 9시까지 하루에 네 번 훈련을 반복했다.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운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목표만 보고 달렸다. 지금은 다 내려놓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 이제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포스트 이상화’로는 김민선(20·의정부시청)을 꼽았다. 김민선에 대해 이상화는 “평창 올림픽 당시 내게 떨지 말라고 조언해주는 모습이 대견했다. 정신력이 강하고 내 어릴 때 모습과 비슷하다”고 했다.

라이벌이면서도 진한 우정을 나누었던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33)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은퇴 소식을 들은 나오가 깜짝 놀라면서 “농담 아니냐. 잘못된 뉴스였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또 나오에게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욕심내지 말고 하던 대로만 하면 좋겠다. 나가노에 놀러 가겠다고 했다”고 했다.

앞날에 대해서는 “스피드스케이팅이 비인기 종목이 될까봐 걱정된다. 생각이 정리된 후의 문제겠지만 후배들을 지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3년 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해설위원이나 코치 둘 중 하나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