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가치, 금융위기 거론 아르헨보다 더 떨어졌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5-13 09: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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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악화되면서 원화 가치가 주요 신흥국 가운데 사실상 가장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관세 폭탄을 계속 주고받으면 세계 경제가 큰 타격을 받으면서 금융시장은 물론이고 수출 등 실물경제도 충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5월 12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지난달 4월 초부터 이달 5월 10일까지 3.72% 떨어졌다. 주요 신흥국 중에는 정치 불안과 외환보유액 부족에 시달리는 터키(―7.4%)에 이어 하락폭이 두 번째이다. 금융위기 가능성이 거론되는 아르헨티나(―3.49%)보다 더 떨어졌을 뿐 아니라 무역전쟁 당사국인 중국 위안화(―1.7%)보다 낙폭이 배 이상 크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이 5월 10일(현지 시간) 2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10%에서 25%로 올리자 장중 1180원 선까지 뛰어올랐다. 이는 2017년 1월 이후 2년 4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었다.

환율 상승의 직접적인 요인은 물론 미중 무역갈등이지만 그보다는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 저하 등 구조적인 문제가 시장에 반영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경제가 1분기(1∼3월) 마이너스(―0.3%) 성장률을 낸 데다 수출이 5개월 연속 감소하며 경상수지의 적자 전환 가능성이 나오는 등 실물경제에 대한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인한 지정학적 우려까지 나오면서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당국도 시장 불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12일 금융감독원 주재로 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연 데 이어 5월 13일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확대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대내외 사정으로 환율이 오르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지만 속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니냐는 내부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환율은 시장 수급에 의해 결정되지만 쏠림 등 이상 징후에 대해선 늘 대비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추세가 이어지면 조만간 환율이 달러당 1200원 선에 도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임혜윤 KTB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상승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고 중국이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응해 위안화 절하를 선택하면 환율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시장에서는 환율 움직임이 앞으로는 조금씩 안정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그러나 미중 무역 분쟁이 본격화하면서 세계 경제가 더 위축되는 결과가 이어진다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우선 미국의 관세 인상에 따라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면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한국에 연쇄적으로 피해가 올 수 있다. 만약 두 나라의 분쟁이 격화돼 세계 경제 자체가 가라앉을 경우 중간재뿐만 아니라 다른 품목의 수출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JP모건과 UBS 등 투자은행들은 무역 분쟁으로 미국과 중국의 성장률이 향후 1년 동안 0.2∼0.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본다. 중국과 미국에 대한 한국의 수출비중은 38.9%로 대만(40.6%) 다음으로 높다. 이미 1분기 한국의 중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7.3% 줄었다.

한국무역협회는 “전자부품, 철강, 화학제품 등 중간재와 자본재를 중심으로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된다”며 “기업의 투자 지연 등 간접 영향까지 감안할 경우 타격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건혁 gun@donga.com / 세종=송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