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고질병 스트레스, 쌓이면 독! 풀어야 산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4-12 08: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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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끊었던 담배가 생각나고,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닭발이 먹고 싶고, 술로 모든 걸 잊고 싶으신가요? 당신은 어쩌면 한국인의 고질병 ‘스트레스’를 앓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업, 취업, 직장, 인간관계…. 각자 이유는 달라도 스트레스 없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쌓아두면 병이 된다는 스트레스, 어디서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요? 한편으로는 스트레스가 마냥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고3, 신입사원, 사회 이슈… 별별 스트레스



“스트레스 별거 없어요. 세상이 스트레스 덩어리죠. 뉴스만 봐도 마약이다 탈세다 난리에 미세먼지는 기승이고, 정치인들은 맨날 싸우고요. 스트레스 풀려고 TV 틀었다가도 다시 열이 올라요. 안 그래도 각박한 세상인데 좋은 소식 대신 나쁜 일만 가득이네요.”-한모 씨(63)


“요즘 제 스트레스 원인 1위는 비닐봉투에요. 마트에서 일을 하는데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 규제 때문에 고객과 마찰이 늘었어요. 오렌지는 되는데 바나나는 안 되고, 헷갈리는 규정 때문에 저희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고…. 고객들은 얼마나 화를 내는지 몰라요. 못들은 척 비닐봉투에 담아가려는 고객과의 눈치 싸움이 하루에도 수십 번 벌어지죠.”-유민숙 씨(53·대형마트 판매원)

“한 달 차 막내작가에요. 처음 2주는 정말 ‘멘붕’, 일이 미숙하고 팀원들과도 어색해서 출근이 두려웠습니다. 점심시간도 긴장의 연속이었죠. 팀 회식 때는닭갈비를 뒤집으며 상사들 신경 쓰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생방송이라 다들 정신없이 바쁜데 저만 할 일을 못 찾아 우왕좌왕하니 눈치도 보였죠. 스트레스 때문인지 평소에 안 꾸던 악몽을 꿨어요. 학생 때와 차원이 다른 스트레스가 절 괴롭히는 것 같아요.”-조모 씨(24·방송작가)

“고3인 저희는 다가오는 대학입시가 가장 큰 스트레스에요. 4월이지만 꽃구경도 맘 놓고 못하고 걱정은 이미 한 가득이죠. 특성화 고등학교라 취업 걱정 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학생이라 마땅히 풀 곳도 없고, 그냥 시간이 빨리 지나길 바라고 있어요.”-김모 양(18)

“스트레스는 간과하면 안 되는 현상이에요. 중요한 건 타인이 아닌 자신의 평가입니다. 남이 ‘이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아?’라고 해도 나 자신이 스트레스로 느끼면 이를 더 중시해야하죠. 한국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나약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죠.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 나약한 것은 달라요. 우리가 손 씻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개인위생을 관리하듯이 심리 위생, 즉 우리 심리 상태도 잘 살피고 보듬어야 해요.”-김수경 상담심리전문가




●쌓이면 독… 푸는 방법도 가지각색



“일, 가사, 노모부양까지 힘들지 않은 날이 없어요. 저만의 해소법은 퇴근길에 버스를 이용하는 거예요. 지하철이 빠르지만 버스를 타면 저만의 시간이 좀 더 생기죠. 부족한 잠을 보충하면서 체력을 회복합니다. 조용히 창밖을 구경하다보면 스트레스로 가득 찼던 머릿속이 조금은 비워지고요. 짧지만 귀한 혼자만의 시간이죠.”-이선은 씨(52·학원 강사)

“동네 오락실에 펀치 기계가 있어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던 날이었어요. 퇴근길에 오락실에 있는 펀치 기계에 눈길이 가더라고요. 민망해서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쳤는데 의외로 통쾌했죠. 그 이후로 스트레스 받는 날에는 한 번씩 들러요. 1000원이면 그 날 스트레스의 반은 날립니다. 점수가 높을수록 그 날의 스트레스가 심한 거예요.”-김모 씨(29·회사원)

“일 때문에 러시아에서 지내는데 타지에 있다 보면 힘든 게 많죠. 무엇보다 의사소통이 가장 큰 스트레스에요. 저는 일주일에 딱 하루 보드카로 스트레스를 날려요. 한국 소주보다 도수가 훨씬 높아서 한 방에 스트레스를 잊고 푹 잠들어요.”-정해진 씨(24·러시아 교환학생)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드레날린, 노르아드레날린, 코티솔이 분비되어 생리적 반응이 나타나요. 맥박과 혈압이 상승하고 호흡이 빨라지며 근육이 긴장되죠. 이는 피로, 두통, 불면 등의 신체증상 그리고 우울, 분노 등의 심리증상을 유발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잦은 흡연과 음주, 과식을 하고 계속해서 잠을 자기도 해요. 대처법은 다양합니다. 안 좋은 생각 바꾸기, 대인관계 조절, 혼자만의 시간 가지기, 스트레스 상황 인정·수용하기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어요.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병원에 방문하는 것이 빠르고 정확한 치료방법이에요. 한 가지 알아둘 점은 좋은 스트레스도 있다는 겁니다. 선거에서 당선되거나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때가 그 예입니다. 이는 감사, 희망, 활력을 주는 건강하고 긍정적인 반응이기 때문에 적당히 필요해요.”-이강준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체인지마인드 심리상담센터’에서 스트레스 검사에 사용하는 맥파 검사 프로그램. 반지형 맥파 센서를 이용해 맥파를 측정하고 혈관건강도·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해주며, 같은 연령대와 비교해 신체적 스트레스 지수를 분석해주기도 한다.
‘체인지마인드 심리상담센터’에서 스트레스 검사에 사용하는 맥파 검사 프로그램. 반지형 맥파 센서를 이용해 맥파를 측정하고 혈관건강도·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해주며, 같은 연령대와 비교해 신체적 스트레스 지수를 분석해주기도 한다.

“개인이 처한 스트레스 상황에 따라 검사와 프로그램도 달라져요. 해소법도 각자의 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어요. 디스크검사(행동유형검사)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주도형은 화가 많아서 운동이 최고에요. 사교형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며 먹고 노는 것, 안정형은 잠이에요. 분석형은 도서관에 가서 책 읽는 것이 잘 맞고요. 만약 안정형에게 등산하라고 하면 스트레스 해소가 아니라 오히려 쌓입니다. 올바른 해소를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 아는 것이 최우선입니다.”-김완수 씨(상담심리전문가·체인지마인드상담센터 대표)



●먹어서 풀어도 좋지만… 과하면 질병 유발



“스트레스에는 매운 게 최고라잖아요. 닭발에 빠져서 일주일에 5일씩 먹은 적도 있어요. 매운 건 점차 적응되더라고요. 정말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 위는 적응을 못했는지 결국 위염을 얻었어요. 일주일 간 약 먹고 죽으로 끼니를 때우느라 스트레스가 더 쌓였죠.”- 김수빈 씨(24·대학생)

“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였는데 적응도 전에 밀려오는 업무, 상사와의 마찰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거의 매일 소주를 두 병씩 마셨을 정도였죠. 금주를 다짐해도 출근하면 스트레스를 받으니 폭음으로 이어지고 점점 몸이 상하더라고요. 치아에서 피가 나고 몸에서는 한기가 느껴져 일상생활이 어려웠어요. 쓰러져서 수액을 맞는 날도 있었고요. 결국 퇴사를 결정했죠.”-김모 씨(26·회사원)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면 식욕중추를 자극해서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게 됩니다. 적당하면 좋지만 과하면 문제에요. 특히 야식, 과식 그리고 과도한 매운 음식 섭취가 문제인데요. 이는 위장관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식습관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 역류성 식도염으로 이어지죠. 특히 여성분들 중에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며 매운 음식을 과도하게 섭취하고 병원을 찾는 분이 많아요. 최근 젊은 층의 질병 트렌드는 위식도 역류질환입니다. 과거에 비해 위염과 위궤양은 줄었지만 위식도 역류질환의 발병률이 높아졌어요. 잘못된 식습관이 주원인이죠. 스트레스 받는 젊은층, 빠르면 중고등학생부터 20대가 잘못된 식습관에서 비롯된 질환에 노출돼있어요.”-박재우 강동경희대 한의과대학병원 교수



●때리고, 부수고… 신(新) 해소법

마지막은 ‘아드레날린’에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메뉴판’. 극소노, 소노, 대노, 극대노는 이를 보고 손님들이 조금이나마 웃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짓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스트레스 해소방 ‘아드레날린’에서 체험 할 수 있는 ‘도끼던지기(첫번째)’. 실제로 날을 간 도끼는 손으로 드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분들이 방문해 가전제품을 부수고 도끼를 던지며 스트레스를 풀어요. 며칠 전에는 40대 여성 분이 혼자 와서 접시를 던지고는 엄청 우시더라고요. 샌드백에 사진을 붙여드리기도 하는데 남편 사진을 인쇄해 붙여달라는 분도 계셨죠. 스트레스를 풀 곳 없고 혼자 울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어요. 소리 지르고 울어도 큰 노래 소리가 막아줍니다. 치우는 건 저희가 하고요. 마음껏 스트레스 풀고 가세요!”-배재용 씨(34·스트레스 해소방 ‘아드레날린’ 운영)

“사용자가 감정을 기록하면, 감정 청소부가 위로를 건네는 ‘감쓰(감정쓰레기통)’이라는 앱을 개발했어요.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속내를 마음껏 표출할 비밀 공간이 없을까’하는 고민에서 시작됐어요. 그래서 철저하게 사적이면서 위로가 되는 공간이자 앱을 생각하며 기획·디자인 했죠. 타겟은 1020 청년들이에요. 취업, 과제, 가정 문제 등 여러 이유로 스트레스 받는 분들에게 감쓰가 치유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감쓰가 있어 다행이라는 말, 감정을 털어놓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 된다는 리뷰를 보면 뿌듯하고 위안이 되죠.”-감쓰 개발팀

“‘열심히 일해서 회사 돈만 벌어준다’는 말처럼 매일 나 아닌 남을 위해 일하는 게 스트레스였어요. 나를 위한 투자도 하고, 뭔가 특별한 걸 배워보자 싶어서 도자기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 했죠. 공방 흙냄새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더라고요. 영화에서나 보던 물레를 잡고 주무르다보니 상념은 잊고 작업에만 집중 할 수 있었어요. 맛 집 탐방이나 여행도 좋지만 새롭게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해요.”-김모 씨(27·회사원)

스트레스에 대한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스트레스의 어원인 라틴어 ‘stringere’는 ‘팽팽하게 당긴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팽팽히 당겨져 긴장하고 고통 받고 있죠. 이 긴장들을 느슨히 풀기 위해서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괴롭고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첫 걸음인 셈이죠. 어떤 의미에서는 ‘항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 상황에 맞는 해답을 찾고 나쁜 스트레스를 밀어내기 위한 전략적 항복이죠. 눈 딱 감고 백기 들면 나쁜 스트레스를 밀어낸 자리를 좋은 스트레스에게 내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신무경 기자 yes@donga.com·정혜리 인턴기자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