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킥보드 규제 푼다, 안전기준 마련 이후에” 생색내기 발표만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4-02 10: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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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형 이동수단(전동 킥보드) 이용자의 안전 확보와 유관산업 활성화를 위해 전동 킥보드 등을 시속 25km 조건으로 자전거도로 주행 허용을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지난 3월 18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제5차 규제·제도혁신 해커톤’ 개최 결과 보도자료를 이렇게 냈다. 4차위는 민간 이해관계자, 전문가, 관계부처가 1박 2일간 끝장토론을 벌여 이런 결론을 냈다고 강조했다. 킥보드 동호회 카페에서는 “전동 킥보드 규제가 풀렸다” “눈총 엄청 받았었는데 이제 자전거도로에 들어갈 수 있다”며 환영했다.



하지만 해커톤에 참여했던 전동 킥보드 업체 대표 A 씨는 4월 1일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발표 내용은 토론 전 회의 때 이미 나온 거고 이후 규제가 새로 풀렸거나 달라진 건 없어요. 하루에 전동 킥보드를 100대 이상 파는데 (고객들) 도로에서 타다 다 죽으라는 거죠.”

대통령이 강조하니 각종 위원회와 부처 공무원들은 “규제를 개혁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업계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은 변한 게 없고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 현장 변화 없는 말뿐인 규제개혁



4차위가 합의한 전동 킥보드의 자전거도로 주행 허용에는 전제 조건이 달렸다. ‘국토교통부는 주행안전기준을 위한 연구용역을 실시한다’, ‘관련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노력한다’. 이것들이 해결된 뒤에야 규제가 풀린다는 뜻이다.

해커톤 개최 이후 2주가 지난 지금 부처들은 서로에게 책임의 화살을 겨누고 있다. 경찰청은 “도로교통법을 개정하려면 전동 킥보드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주행안전기준이 필요하다. 국토부가 기준을 만들면 법 개정을 하겠다”고 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도로에서 어떤 것들이 다닐지 결정하는 건 경찰청인데 소극적”이라며 “연구용역이 필요한 건지 의문스럽지만 과업지시서를 마련 중이다”라고 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전동 킥보드는 이륜차라 일반 도로를 달려야 한다. 전기자전거와 속도가 비슷하고 무게는 가벼운데 부당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었다. 버스나 택시, 차량도 전동 킥보드 이용자들을 ‘킥라니’라고 부르며 불편해했다. 킥라니는 도로나 인도를 달리는 전동 킥보드가 고라니처럼 불쑥 튀어나오는 상황을 비판하는 합성어다. 이에 전동 킥보드를 자전거도로에서 탈 수 있게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2017년 발의됐다. 2년이 지나서야 부처 실무진이 모두 모여 합의를 이뤘다고 발표했지만 규제가 풀린 건 없다.




○ 실적 건수 올리려는 규제정보포털



공무원의 실적 부풀리기 위주의 규제 완화 사례는 국무조정실이 운영하는 규제정보포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7년 12월 전까지 지방자치단체장은 재래시장, 해수욕장, 지역축제 등에서만 음식점이나 즉석판매제조 가공업 시설 기준을 따로 정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문경시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폐광산을 활용해 음식점을 설치하려고 해도 규정 위반이었다. 이 때문에 불합리한 규제를 풀어달라는 지자체의 요구가 많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규정된 곳 외의 장소에서도 지자체장이 시설 기준을 따로 적용할 수 있게 풀어줬다.

국무조정실은 이 내용을 규제정보포털에서 ‘신산업 규제혁파 과제’ 실적으로 올렸다. 신산업 규제혁파 과제는 미래 먹거리를 위한 항목이다. 그런데 음식점 시설 기준 바꾼 것을 신산업을 위한 규제혁파 사례로 분류한 것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개선 과제라 신산업 규제혁파 과제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 공무원들 “다 필요한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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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최근 대대적으로 도입하기로 한 ‘규제 정부 입증책임제도’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많다. 규제 정부 입증책임제도는 공무원이 규제 존속의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규제를 폐지하거나 개선하는 것이다.

국무조정실은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각 부처가 5월까지 총 480개 행정규칙, 3098개 규제사무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부처는 규제입증위원회를 설치하고 공무원이 규제의 존치 필요성을 입증하는 회의를 진행한다.

그러나 위원회가 열리기도 전부터 공무원은 규제를 풀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우선 담당 과 공무원들에게 해당 규제의 존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받았다. 공무원들이 “개선하겠다”고 의견을 낸 건 3건이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규제가 필요 없으면 왜 만들었겠냐”며 “다 예민한 문제라 심사를 해봐야 얼마나 해소될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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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유근형(정치부) 배석준(산업1부) 염희진(산업2부) 김준일(경제부) 임보미(국제부) 한우신(사회부) 최예나(정책사회부) 김기윤 기자(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