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인사 검증 참사를 먼나라 얘기처럼 하는 이유는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4-02 09:58:16
공유하기 닫기
정연욱 논설위원
“(장관 후보자가) 부실 학회 참석 사실을 밝히지 않아 검증에서 걸러낼 수 없었다.” “인사-민정 라인에 특별한 문제가 파악된 것은 없다.”

3·8개각 참사의 직격탄을 맞은 청와대가 내놓은 해명들이다. 장황하지만 ‘내 탓’보다는 ‘남 탓’이 대부분이다. 허물이라는 게 국가 기밀도 아니고 국회 보좌관 3, 4명만 투입해 기초 조사만 하면 다 걸러낼 정도인데도 그렇다. 후보자를 추천하고 검증하는 청와대 인사-민정 라인의 실책은 문제없다고 받아쳤다. 그러니 ‘송구스럽다’는 성명은 마지못해 나온 느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후보자 낙마 후 첫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부실 검증 문제는 꺼내지도 않았다.



독일의 헌법학자 카를 슈미트는 “정치의 본질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정치 현장에서 적과 동지가 있을 뿐 제3의 회색지대는 없다는 얘기다. 여권, 특히 청와대에선 ‘적과 동지’ 구도가 더 뚜렷해지고 있다. 청와대의 해명에서 보듯이 야당 공격의 빌미가 될 ‘내 탓’은 들어설 자리가 없어졌다.

작년에 국토교통부 장관이던 김현미 의원이 동료 의원들과 돌려봤다던 ‘(미국)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이란 책 내용도 비슷하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부가 중도정치와 그랜드 바겐(대타협)을 외치느라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했고, 월가 경영진에 유화적 태도를 취한 게 민주당 지지층에 상처를 줬다는 것이다. 저자의 예언대로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는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여권은 노무현 청와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이라크 파병을 비롯해 야당과 공동 운영하자는 대연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당청 인사 갈등으로 여권의 내분이 격화됐고, 지지층이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당시 여당이 청와대의 장관 추천자를 두고 반발하자 노 전 대통령은 ‘권력투쟁 상황’이라며 격노했었다. 그래서 현재 여권은 지지층 다독이기에 주력하고 있다. 보기 드물게 청와대와 여당이 한 몸처럼 움직이고, 정부가 ‘코드’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진보 진영에 계속 손을 내미는 이유다. 정치권에서 어느 정도의 편 맺기와 편 가르기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국민 눈높이라는 선(線)을 넘을 경우다. 경계선이 무너지면 국민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우리 편에 한없이 관대해지는 ‘내로남불’이 일상이 되어버린다.


현 정부가 띄우는 대표적 키워드는 ‘평화’ ‘항일’ ‘서민·약자 보호’다. 반대편에 ‘반평화’ ‘친일’ ‘기업’을 놓고 전선을 그어놓았다. 이 대결 구도가 굳어질수록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된다. 일종의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정치다. 합리적인 지적조차 자칫 ‘발목 잡기’라는 이유로 배제되면서 편협해질 수 있다.

남북 평화 분위기에 맞춰 추진된 3·1운동 100주년 기념 남북 공동행사는 결국 무산됐다. 평화 키워드에 집중하느라 3·1운동까지 김일성 일가의 업적으로 미화한 북한 체제의 현실엔 애써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친일 논란이 제기되는 상황도 그렇지만, 한 손으로 기업을 때리면서 또 다른 손으로 기업에 일자리 만들기를 주문하는 딜레마가 벌어지고 있다. 이미 정책 파탄이 드러났는데도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양보는 있을 수 없다고 주문처럼 외는 것도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대표적 사례다.

확증 편향이 깊어질수록 현실을 냉정하게 보기 어렵다. 청와대가 인사 검증 참사를 먼 나라 얘기처럼 하는 것도 그렇다. 지지층의 기대와 국민의 눈높이는 엄연히 다르다. 두 달 뒤 집권 2주년을 맞는 여권은 국민 눈높이에 균형을 맞춰야 할 때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