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죽음 직면한 후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 시작한 작업은…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3-29 12: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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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루 시오타, 손 안의 열쇠, 2015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누구에게나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 있다. 일본 출신의 설치미술가 치하루 시오타는 개개인의 기억을 끄집어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실로 엮는다. 침대, 드레스, 신발, 가방 등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이 서린 일상적인 사물들은 그의 손을 거쳐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201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일본관에 선보인 ‘손 안의 열쇠’는 시오타의 작업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전시장 천장을 미로처럼 촘촘하게 감싼 실들이 바닥에 놓인 낡은 두 척의 배를 잇고 그 사이에 5만 개의 열쇠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 열쇠들은 작가가 세계 도처에서 수집한 18만 개 중 선별한 것이다. 열쇠는 소중한 것을 보호하는 일상의 물건이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맡길 수 있는 믿음의 징표다. 작가는 피를 상징하는 붉은 실로 엮인 이 열쇠들이 “진실한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인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한 매듭짓고, 얽히고, 묶이고, 풀리고, 절단되는 실타래의 속성은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단어와 너무나 닮았다.



시오타는 가족의 죽음을 직면한 후 무언가를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해 이 작업을 시작했다. 매일 사람의 온기와 접촉하며 기억을 축적한 열쇠들을 모아 자신의 작업과 연결시켰다. 작품 제작을 위해 인터넷 광고를 냈을 때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열쇠를 보내왔고, 때로는 열쇠에 담긴 사연을 적은 편지도 동봉해 왔다. 그러니까 그가 모은 열쇠는 단순히 쓸모를 다한 물건이 아니라 18만 명의 소중한 기억과 이야기를 간직한 오브제인 것이다.

전시장 바닥에 놓인 두 척의 배는 기억의 비를 모으는 두 손을 상징한다. 상실의 슬픔을 넘어 기억과 함께 기회와 희망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작가는 이 배들이 개별적인 기억을 모으면서 거대한 바다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한다. 열쇠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니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