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 4분 지각해 살아난 홀로코스트 생존자 “두 번째 살아”

phoebe@donga.com2018-10-30 2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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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사메트(Judah Samet‧80) 씨. 출처=유튜브
유대계 미국인 유다 사메트(Judah Samet‧80) 씨가 나치 병사가 어머니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본 것은 그의 나이 일곱 살 무렵입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독일 북부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10월 27일 토요일(현지시간) 홀로코스트 생존자 사메트 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스쿼럴 힐에 있는 ‘생명의 나무’ 유대교 회당에서 벗들이 괴한이 쏜 총알에 쓰러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습니다.

증오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절대로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사메트 씨는 이날 예배당에 4분 늦었습니다. 그리고 그 4분이 삶과 죽음을 경계를 갈랐습니다. 그가 도착했을 때 경찰관들과 총잡이 사이에 총알이 오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회당에서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1명을 죽인 남자의 얼굴을 봤습니다.



용의자 로버트 바우어스
“그는 마치 기관단총으로 쏘는 것 같았습니다.” 사메트 씨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메트 씨는 나중에 용의자를 경찰에 설명해야 할 때를 대비해, 더 잘 보기 위해 차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남자가 잡혔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제 두 번째로 살아남았습니다.”

나치 독일은 73년 전 헝가리에 살던 사메트 씨와 가족을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가족이 모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는 기차에 탔다고 CNN에 말했습니다.

아우슈비츠 가스실에 들어갔다면 바로 죽었을 겁니다. 그러나 가족은 베르겐 벨센 집단수용소로 옮겨졌죠. 하지만 이곳 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안네 프랑크를 비롯해 약 5만 명의 유대인들이 베르겐-벨센 수용소에서 사망했습니다.

“베르겐 벨센에서는 기아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우리 모두를 구해주셨죠. 바위처럼 단단한 빵을 잘게 부순 다음 하루 여섯 번 우리에게 먹여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거의 처형될 뻔한 날, 사메트 씨는 지휘관에서 어머니가 헝가리어와 독일어를 모두 할 줄 아니까 통역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당신이 그녀를 죽이면, 당신은 저들에게 말할 사람을 잃는 거야!”

홀로코스트에서 탈출한 후, 사메트는 결혼해 자식을 낳았고 이스라엘 군대에서 낙하산 부대원으로 복무했습니다.



사진출처 | (GettyImages)/이매진스
사진출처 | (GettyImages)/이매진스
27일 총격에서 살아남은 후, 사메트 씨는 경찰 출입금지 테이프와 희생자들의 임시 묘지석, 조문객의 꽃으로 어지러운 유대교 회당에 조심스럽게 걸어갔습니다. 그는 기도를 드리고, 자신에게 이것저것 묻는 이들에게 차근차근 대답했습니다. 그는 그날 살해된 거의 모든 사람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소식을 들은 딸이 눈물범벅이 돼 뛰어왔습니다. 부녀는 포옹했습니다. “나 여기 있어”라고 그가 속삭였습니다.



사진출처 | (GettyImages)/이매진스
총기난사범 로버트 바우어스는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꾸준히 표출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바우어스는 소셜미디어 갭닷컴의 자기 소개란에 “유대인은 사탄의 자식들”이라고 적었습니다. 배경 사진에 적힌 ‘1488’도 백인 우월주의 슬로건의 단어 수 14와 나치 추종자를 상징하는 88을 조합한 것입니다. 나치의 광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진출처 | (GettyImages)/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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